[HL/드림/250410] 엄마와 아빠가 된 날
박사는 지금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다.
바벨 내에서 잠깐의 소란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근처에 있던 아미야가 휘말리면서 부상을 입었는데, 하필이면 머리를 강하게 부딪힌 탓에 기억에 혼선이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미야의 부상 소식에 놀라서 테레시아와 함께 달려왔더니, 멍하니 있던 아미야가 쪼르르 달려와 테레시아에게 안겼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 엄, 마? 아빠? ”
“ 네, 네? 엄마? ”
“ ... 아빠라고 한 건가? ”
이래서 곤란하다고 한 것이었다.
아미야가 머리를 다치면서 바벨에서 지냈던 기억을 까맣게 날려버렸다는 것, 그리고 테레시아를 보고서 엄마, 자신을 보고 아빠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테레시아는 머리 위로 솟은 검은 뿔을 보고서 귀라고 생각해 엄마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어째서? 검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아미야에게 아빠가 아니라고 설명하려고 하니,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려고 하는 모습에 차마 진실을 알려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켈시가 테레시아를 보며 말했다.
“ 잠시 아미야를 데리고 나가 있어 줘. ”
“ 응. 알겠어. ”
“ 박사, 아미야는 지금 바벨 내전을 포함해서 그 이후로의 기억이 전부 날아간 상태야. 아마도 금방 돌아오겠지만... 그래도 테레시스랑 박사가 아미야를 봐줄 수 있을까? ”
“ 보는 건 문제 없다만... 저 호칭은 그대로 둘 생각인가? ”
“ 아무래도, 호칭을 고치려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데 아미야가 부모를 잃었다는 걸 들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 ”
“ 그녀를 위해서라도 알리지 않는 게 좋겠군. ”
“ 그럴 생각이야. 내일모레쯤, 제대로 회진 준비할 테니까, 내일 봐. ”
박사는 켈시와 대화를 나눈 걸 끝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미야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는 평생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단어였다. 동면하기 전에도, 깨어난 이후에도. 자신과 기약이 없는 단어를 듣자, 기분이 생소해졌다.
무언가 끝에서부터 간질간질하게 올라오는 느낌.
그것이 불쾌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산뜻한 느낌을 안겨주는 기분이었다. 박사가 문을 열자, 테레시아의 품에 안겨있던 아미야가 박사를 보았다.
아미야는 박사를 향해 안아달라는 듯 팔을 뻗어왔다. 아미야의 행동을 알지 못한 박사가 머뭇거리자, 테레시아가 박사에게 아미야를 넘겨주었다.
“ 박사, 아미야는 지금 박사에게 안기고 싶은 거야. ”
“ ... 아미야. ”
“ 아빠. ”
어정쩡하게 안아주는 박사와 불편할 텐데도 박사를 안고 있는 아미야의 모습을 지켜보던 테레시아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옅은 미소를 띠던 것도 잠시, 박사와 함께 나란히 걸으며 아미야의 방으로 향했다.
걷는 동안 아미야는 박사의 등에 업힌 채 곤히 잠들었다. 아미야의 방에 도착한 이후 박사는 잠든 아미야를 침대에 눕혔고, 두 사람은 계속 잘 자고 있는 걸 확인한 뒤에야 조용히 방을 나갔다. 천천히 문이 닫히는 걸 보던 테레시아가 박사를 향해 물었다.
“ 박사, 아까... 켈시가 뭐라고 했어? ”
“ 아미야의 기억이 내전을 포함해 그 이후의 기억이 사라진 상태라는데, 내일 제대로 회진하면서 상태를 살펴본다고 하더군. 일시적인 거라 금방 돌아올 수도 있다고 들었다. ”
“ 그래? 그럼, 호칭은... ”
“ 기억에 혼란이 올 때 아미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기억을 되찾기 전까지는 아무 발언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 ”
“ 그, 그러면... 박사랑 내가... ”
“ ... 크흠... ”
박사는 방에서 나오자마자 테레시아에게 자신이 들은 것을 알려주었다.
켈시가 전해주었던 걸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전부. 호칭에 관해서도 알려주자, 테레시아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두 눈으로 보았다.
테레시아의 반응에 박사까지 덩달아 마른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박사의 귀 끝이 묘하게 붉어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아주 잠깐이나마 아미야의 보호자가 되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박사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같은 종족이자, 보호자로 있는 새비지가 아니라 어째서 테레시아였을까.
“ 박사! 아미야에게 사고가 생겼다고 들었는데! ”
“ 새비지. 임무는 잘 끝난 건가? ”
“ 물론이지! 아미야의 상태를 확인하고 또 할 게 있긴 하지만... 아미야는 어때? ”
“ 지금은 잠들었다. ”
“ 으응... 아빠, 엄마... ”
“ 어, 어? 박사...? ”
“ ... 이건 내가 설명하지. ”
아미야의 부상 소식에 다급하게 달려온 새비지가 박사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다.
박사는 임무를 나갔던 새비지를 보며 생각만 했을 뿐인데 나타나는 걸 신기하게 생각했다. 아미야의 상태를 물어오자, 잠들었다고 답한 것도 잠시 문을 열며 눈을 비비고 있는 아미야가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가 아빠, 엄마라는 호칭까지.
박사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당황한 채 말을 더듬으며 박사와 아미야, 테레시아를 번갈아 보는 새비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테레시아에게는 잠시 아미야를 부탁한다고 말하자, 그녀가 알겠다며 아미야를 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에 남겨진 박사는 새비지에게 있었던 일을 다시 알려주었다.
“ 그러니까 내일모레, 검진한다는 거지? ”
“ 그래. 켈시가 말하길, 기억이 금방 돌아올 거라고도 하더군. ”
“ 그러면 다행인데...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
“ 음, 그러지. 새비지는 아미야가 왜 테레시아를 보며 엄마라고 하는지... 알고 있나? ”
“ 뭐... 듣기로는 아미야가 자기 엄마는 엄청 예쁘다고 했어. 테레시아도 예쁘니까, 그래서 엄마라고 부른 거 아닐까? 그냥 내 생각일 뿐이야! ”
“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
박사의 설명과 내일모레의 회진이라는 말에 새비지는 내일 만나자며, 그대로 돌아갔다.
다음 날, 박사와 테레시아가 아미야를 데리고 켈시를 만나러 왔을 땐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박사의 검은 외투 위로 덕지덕지 스티커가 붙어있었고, 테레시아의 머리카락은 엉성하게 땋아져 있었다. 누가 보아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장난친 아미야의 짓이었다.
켈시는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겨우 웃음을 참으며 세 사람을 보았다.
다행히도 오는 길에 잠든 건지, 아미야는 박사의 품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켈시가 아미야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짧게 침음했다.
“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
“ 아니, 없어. 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 같네. 곧 있으면 기억도 돌아올 거야. ”
“ 기억이 돌아오면... 잊었을 때의 기억은 어떻게 돼? ”
“ 기억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기억을 하지 못해. 아마 아미야도 그럴 거야. ”
“ ... 함께 한 기억들이... 전부 날아가는 거네. ”
“ 테레시아. ”
박사는 잠든 아미야를 보며 어딘가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테레시아를 보았다.
심장 부근이 지끈거려오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박사의 시선이 켈시에게로 향했다.
켈시 역시 테레시아를 보고 있었던 모양인지, 박사와의 시선은 조금 늦게 마주했다.
“ 그전까지는 여전히 함구하는 게 좋겠지. ”
“ 아무래도. 기억에 혼동이 온다면 그거야말로 정신 붕괴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
“ 그러도록 하지. 아미야, 일어나 있는 걸 알고 있다. 눈 뜨는 게 좋겠군. ”
“ 헤헤... 아빠, 어떻게 알았어요? ”
“ ... 다 아는 수가 있다. ”
“ 엄마, 울어요? ”
“ 아니, 아미야. 울지 않아. ”
대화를 끝낸 박사가 시선을 내려 아미야를 보았다.
그의 말에 아미야가 눈을 감은 상태인데도 움찔거렸다. 실눈을 뜨던 아미야는 박사의 시선에 움찔거리며 어색하게 웃고 말을 돌렸다.
고개를 돌려 테레시아를 보더니 박사의 품에서 테레시아의 품으로 옮겼다.
켈시는 세 사람을 보며 아주 만약,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세상에서는 저 세 사람이 웃고 떠들며 진심으로 가족이 되는 곳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을 리 없는 망상에 불과했지만, 그저 막연하게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fin.